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칼을 두고 간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칼 같은 날붙이는 건 그냥 두고 가는 게 좋다”고 조언하셨고 이에 대한 미신적 믿음도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왜 이런 말이 전해지는 걸까요? 이사갈 때 칼을 두고 가는 이유와 이에 대한 미신이나 풍습과 요즘 현실에 맞는 대처 방법까지 알아보겠습니다.
1. 칼을 ‘끊어내는 물건’ 봄
과거에는 가위나 칼처럼 무언가를 ‘자르고 끊는’ 도구가 가정의 운세나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사라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시점에 날붙이를 새집에 가져가면 복이나 인연이 끊긴다고 믿었습니다.
즉, 옛집에 칼을 두고 가야 새집에서 무탈하고 순조롭게 지낼 수 있다는 속설이 생겼기 때문에 칼을 두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2. 나쁜 기운을 남기고 떠난다는 상징
특히 부엌칼은 식재료를 다루면서 여러 기운이 얽힐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음식에 담긴 ‘생명력’부터 주방에서 생기는 온갖 기운이 칼을 통해 축적된다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 부정적인 기운 역시 칼에 서린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사를 계기로 “좋지 않은 기운은 칼과 함께 남기고 떠나자”는 의미가 덧붙여진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사가기 전 집에 칼을 두고가거나 숨겨놓고 가는 경우가 있어 종종 다툼이 생기곤 합니다.
3. 굳이 챙겨가지 않는 경우
미신적 관념과 별개로 칼은 안전 문제 때문에 이삿짐으로 챙기기가 까다로운 물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사를 하는 동안 잘못 포장하면 찔리거나 베이는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날이 무뎌진 칼을 굳이 새 집까지 가져가는 게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칼을 두고 간다’는 풍습은 실은 미신이라기보다 생각보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집에 칼을 두고 가기 보다는 버려주고 가는게 예의입니다.
4. 새로운 집에는 새로운 칼
한국에서는 예부터 중요한 집안 물건은 직접 고르고 새로 장만해 쓰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식칼 또한 그중 하나인데 새집에서 새 칼을 쓰는 것이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 때문에 선호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오래 쓰던 칼을 자연스레 두고 떠나는 관습이 자리 잡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4. 개인별로 다른 이유
모든 지역이나 가정에서 이 관습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칼을 두고 가는 건 낭비다”라며 끝까지 챙겨가는 분도 있고 “지금 쓰는 칼을 버리기 아깝다”며 이사를 해도 계속 사용하는 분도 많습니다.
요즘은 과거처럼 미신을 맹신하기보다 각자가 알아서 취사선택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이와 관련된 속설을 전해 들은 분들은 여전히 “혹시 모르니 칼은 두고 가겠다”는 쪽을 택하기도 합니다.
미신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경우
1. 포장해서 챙겨가기
만약 칼을 꼭 챙겨가고 싶다면 반드시 꼼꼼하게 포장하여 안전하게 가져가야합니다. 특히 신문지나 뾱뾱이(에어캡)로 손잡이와 날을 분리 포장하고 날 부분은 여러 겹 싸서 꽁꽁 감싼 뒤 상자에 넣으면 훨씬 안전합니다.
그리고 상자 위에 ‘위험물’이라는 표시를 꼭 붙여두면 이삿짐 센터 직원이나 가족이 다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2. 새 칼을 장만하기
무뎌진 칼이나 오래된 칼을 ‘충분히 쓸 만해서 아깝다’고 느낀다면 캠핑용으로 재활용하거나 블레이드 부분만 갈아서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는 적절히 수리하거나 소독 후 기부를 고려해볼 수도 있으며 칼을 기부할 때는 안전상 문제를 꼭 확인해야 하고 받아주는 단체가 있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3. 가벼운 의식이나 마음가짐으로 정리하기
미신이 마음에 걸리지만 꼭 챙겨가고 싶다면 가벼운 의식을 갖춰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칼과 함께 운도 새로워질 것”이라고 다짐하며 헌 칼에 짧게 편지를 쓰거나 헌 칼을 깨끗이 닦은 뒤 소금을 약간 뿌려 정갈하게 두고 떠나는 의식 등도 해볼 만합니다.
이는 마음의 짐을 덜고 가기 위한 자기 위로의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4. ‘소문난’ 속설에 대한 유연한 태도
어떤 사람은 이 삿짐 속에서 칼이 가장 마지막까지 같이 갔는데도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반대로 칼을 두고 갔는데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미신은 100%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각자 믿거나 말거나의 영역이기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 없이 “이사는 늘 복잡하고 긴장되는 일이라 이런 속설이 생긴 것” 정도로 바라보면 됩니다.
오래전부터 칼을 두고 가는 풍습은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의 전통이자 미신적 사고가 뒤섞인 관습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실용적이기도 하고 새 집에서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마음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각자의 상황에 맞춰 선택하되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마음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사를 앞두고 있다면, 이 ‘칼을 두고 간다’는 옛 이야기의 배경과 의미를 살짝만 염두에 두고, 자신에게 맞는 결론을 내리시면 좋겠습니다.